Post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 05 책임과 메시지

05 책임과 메시지

5장에서는 4장에서 다루었던 앨리스의 재판 이야기로 책임과 메시지를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책임감 분산 현상

존 달리와 밥 라타네는 학생을 방 안에 격리해두고 옆 방에도 다른 학생들이 격리되어 있다고 믿게 한 뒤, 도움을 청하는 다른 학생의 음성을 송출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실험을 수행한다. 자신 말고 도와줄 사람이 더 있다고 믿었을 때는 31%의 참가자만이 도와주려는 행동을 취한 반면, 자신과 도움이 필요한 학생 단 둘만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85%의 참가자가 행동을 취했다. 이러한 결과로 사건에 대한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명확한 책임과 역할을 지닌 참가자들이 협력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율적인 책임

객체지향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자율적’인 객체다. 자율적인 객체는 스스로 정한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기반으로 책임을 수행하는 객체다. 객체가 책임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객체에게 할당하는 책임이 자율적이어야 한다. 지난 4장의 앨리스 예제에서 왕이 모자 장수에게 ‘증언하라’는 요청을 전송했을 때, 모자장수는 재판이라는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증언할’ 책임을 진다. 이때 왕은 모자 장수가 ‘증언하라’는 요청에 대한 책임을 완수할 수만 있다면 모자 장수의 증언의 방식이 어떻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만약 왕이 모자 장수에게 ‘목격했던 장면을 떠올려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고 말로 간결하게 표현하라’ 고 요청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히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모자 장수는 증언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이나 절차에 대해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후자의 겨웅 모자 장수는 책임을 수행하기 우해 자신의 의지나 판단이 아닌 왕의 명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자율적으로 책임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객체가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책임의 수준 역시 자율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책임을 선택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왕이 모자장수에게 단순히 ‘설명하라’ 고 요청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은 협력을 더 다양한 환경에서 재사용할 수 있또록 유연성을 주지만, 책임은 협력에 참여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객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무엇을’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메시지와 메서드

메시지

객체는 메시지를 전송함으로써 다른 객체에 접근하며, 메시지-전송 매커니즘은 객체가 다른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메시지 전송은 수신자와 메시지의 조합이고, 메시지는 메시지 이름과 인자의 조합이다. 따라서 메시지 전송은 수신자, 메시지 이름, 인자의 조합이 된다. 예를 들어 왕이 모자 장수에게 어제 왕국에서 목격한 것을 증언하라는 요청을 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송할 것이다.

image

송신자는 메시지 전송을 통해서만 다른 객체에 책임을 요청할 수 있고, 수신자는 오직 메시지 수신을 통해서만 자신의 책임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객체가 수신할 수 있는 메시지가 객체가 수행할 책임을 결정한다. 객체는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한 방법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외부의 객체는 메시지에 관해서만 볼 수 있고 객체 내부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객체의 외부와 내부는 메시지를 기준으로 분리된다.

메서드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메서드라고 한다. 객체는 메시지를 수신하면 먼저 해당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메시지를 처리할 방법인 메서드를 선택하게 된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메서드는 함수 또는 프로시저를 통해 구현된다. 메시지는 ‘어떻게’ 수행될 지는 명시하지 않고 ‘무엇’ 이 실행되기를 바라는 지만 명시하므로 어떤 메서드를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수신자가 결정한다.

다형성

다형성이란 서로 다른 유형의 객체가 동일한 메시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지에는 처리 방법과 관련된 어떠한 제약도 없기 때문에 동일한 메시지여도 서로 다른 방식의 메서드를 이용해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다형성은 하나의 메시지와 하나 이상의 메서드 사이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다형성은 역할, 책임, 협력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서로 다른 객체들이 다형성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객체들이 동일한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형성은 메시지 송신자의 관점에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타입의 객체와 협력할 수 있게 하며 대체 가능성을 의미하고, 송신자는 수신자의 종류를 모르더라도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어 송신자와 수신자간의 객체에 대한 결합도를 메시지에 대한 결합도로 낮출 수 있다. 즉,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객체와도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송신자는 수신자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협력에 참여하는데, 이는 세 가지 효과가 있다.

  1. 협력이 유연해진다.

    수신자를 다른 타입의 객체로 대체하더라도 송신자는 알지 못한다. 송신자에 대한 파급효과 없이 유연하게 협력을 변경할 수 있다.

  2. 협력이 수행되는 방식을 확장할 수 있다.

    송신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수신자를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을 확장하고 싶다면 새로운 유형의 객체를 협력에 추가하면 된다.

  3. 협력이 수행되는 방식을 재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객체들이 수신자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맥에서 협력을 재사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다형성을 지탱하는 메시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설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훌륭한 메시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의 중심 사상은 연쇄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신하는 객체들 사이의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유용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며, 애플리케이션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클래스가 아닌 객체이고, 이러한 객체들의 윤곽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객체들이 주고 받는 메시지이다. 객체를 이용하는 중요한 이유는 독립적인 객체가 아닌, 객체가 다른 객체가 필요로 하는 행위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협력 관계 속에서 ‘다른 객체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훌륭한 책임을 도출할 수 있다. 객체가 메시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객체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책임-주도 설계

앞에서 다루었던 책임-주도 설계를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자. 객체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다른 객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어떤 메시지가 필요한지 결정한다. 메시지를 결정한 후에는 메시지를 수신하기에 적합한 객체를 선택하는데, 이러한 메시지는 수신자의 책임을 결정한다. 메시지를 수신하고 필요에 따라 메시지를 전송하는 협력 과정은 시스템의 책임이 완전히 달성될 때까지 반복된다. 책임-주도 설계의 핵심은 어떤 행위가 필요한지를 먼저 결정한 후에 행위를 수행할 객체를 결정하는 What/Who 사이클 에 있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객체가 외부에 제공하는 인터페이스가 묻지 말고 시켜라(Tell, Don’t Ask), 데메테르 법칙(Law of Demeter) 스타일을 따르게 한다. 송신자는 수신자가 어떤 객체인지 모르기 때문에 객체에 관해 물을 수 없으며, 단지 자신이 전송한 메시지를 잘 처리할 것이라고 믿고 메시지를 전송할 수 밖에 없다. 이는 객체는 다른 객체의 결정에 간섭할 수 없으며 모든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는,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이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어떻게’에서 ‘무엇’으로 전환하는 것은 객체 인터페이스의 크기를 감소시켜 외부에서 해당 객체에게 의존하는 부분을 감소시킨다.

객체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는 어떤 두 사물이 마주치는 경계 지점에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게 이어주는 방법이나 장치를 의미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대상과 상호작용하고 싶다면 그 대상이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자동차를 예시로 인터페이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터페이스의 사용법을 익히기만 내부 구조나 방식을 몰라도 쉽게 대상을 조작하거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운전자는 자동차의 내부 작동 원리를 몰라도 운전하는 방법만 안다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

  2. 인터페이스 자체는 변경하지 않고 단순히 내부 구성이나 작동 방식을 변경하는 것은 인터페이스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동차의 엔진을 교체해도 운전자는 원래 방식대로 운전하면 된다.

  3. 대상이 변경되더라도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다.

    차종이 변경되어도 운전자는 어떤 자동차라도 운전할 수 있다.

객체의 인터페이스는 객체가 수신할 수 있는 메시지의 목록으로 구성되며, 객체가 어떤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지가 객체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를 결정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터페이스는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공개된 인터페이스인 공용 인터페이스와 내부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감춰진 인터페이스로 구분되는데, 이떄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수행하는 메시지는 객체의 공용 인터페이스를 결정한다.

객체의 인터페이스와 관련하여, 맷 와이스펠드의 객체지향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좀 더 추상적인 인터페이스

    추상화를 통해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면 수신자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

  • 최소 인터페이스

    외부에서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인터페이스는 최대한 노출하지 말라. 내부 동작에 대해 가능한 한 적은 정보만 외출에 노출해야 내부를 수정할 때 외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 인터페이스와 구현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

    구현은 내부 구조와 작동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객체를 구성하지만 공용 인터페이스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객체의 상태와 행동은 모두 구현에 해당되며 객체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라는 것은 객체의 외부에 노출되는 공용 인터페이스와 객체 내부에 숨겨지는 구현을 명확히 분리하라는 뜻이다. 소프트웨어는 항상 변경되기 때문에 어떤 객체를 수정했을 때 어떤 객체가 영향을 받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아무리 작은 부분을 수정하더라도 변경에 의한 파급효과는 막대할 것이다. 따라서 변경해도 무방한 부분과 변경했을 경우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인터페이스와 구현을 분리하는 것은 변경을 관리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공용 인터페이스와 사적인 구현을 분리하는 것은 외부에 제공할 필요가 있는 메시지만을 공용 인터페이스에 포함시키고 개인적인 것은 뒤로 감춤으로써 외부의 불필요한 공격과 간섭으로부터 내부 상태를 격리할 수 있게 한다. 즉, 객체는 공용 인터페이스를 경계로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율적인 책임의 중요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임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율적인 책임은 협력을 단순하게 만든다.

    자율적인 책임은 세부적인 상항들을 무시하고 의도를 드러내는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협력을 단순하게 만든다. -> 추상화

    '목격했던 장면을 떠올려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고 말로 간결하게 표현하라' -> '증언하라'

  2. 자율적인 책임은 외부와 내부를 명확하게 분리한다.

    협력의 양상은 외부 관점과 내부 관점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외부에서는 책임을 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수행하는지는 볼 수 없다.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외부에 노출하는 부분과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나눠, 요청하는 객체가 몰라도 되는 사적인 부분이 객체 내부로 캡슐화되어 인터페이스와 구현이 분리된다.

  3. 책임이 자율적인 경우 책임을 수행하는 내부적인 방법을 변경하더라도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변경에 의해 수정돼야 하는 범위가 좁아지고 명확해진다. 즉, 변경의 파급효과가 객체 내부로 캡슐화되기 때문에 두 객체 간의 결합도가 낮아진다.

  4. 자율적인 책임은 협력의 대상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증언하라’ 는 단순하고 자율적인 책임 덕분에 모자 장수뿐만 아니라 요리사와 앨리스도 증인이 될 수 있다.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협력이 좀 더 유연해지고 다양한 문맥에서 재활용될 수 있다. 즉, 설계가 유연해지고 재사용성이 높아진다.

  5. 객체가 수행하는 책임들이 자율적일수록 객체의 역할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모자 장수의 ‘증인석에 입장하다’와 ‘증언하다’라는 두 책임은 ‘증인’이라는 ‘역할’을 설명하기에 필요하며 또 충분하다. 객체는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는 연관된 책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수행하는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객체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객체의 응집도를 높은 상태로 유지하기 쉽다.

정리하면, 책임이 자율적일수록 적절하게 추상화되며 응집도가 높아지고, 결합도가 낮아지며, 캡슐화가 증진되고, 인터페이스와 구현이 명확히 분리되며, 설계의 유연성재사용성이 향상된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